0806(토)
텅에서.
‘Loleatta Holloway - Cry to Me’를 들으며.
어김없이 무언가를 그으며 적어 보는 일기는 텅에서만 쓰게 된다. 거의 텅만 찾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괜히 머무르다 가고픈 마음이 한 획, 한 획을 긋게 만드나 보다. 열흘 만에 찾아왔다. 지난 주말은 금주에 떠난 베트남 해외 출장 준비로 들르지 못했기 때문에 주 1회는 꼭 찾아오던 방앗간을 들르지 못해서 나름 섭섭한 마음이 가득했다는 것.
이어폰에서 ‘Sam Cooke - A change Is Gonna Come.’이 나오고 있는데 도입부가 너무 좋아 바로 화면을 톡톡- 두드려 제목을 확인했다. 내 오른쪽에 앉은 여성분께서 꽤 짙은 향수 냄새가 난다. 달콤한 꽃향기. 프루티함이 더해진. 동시에 성숙함이 묻어나는 향기. 알 수 없는 실루엣이 머릿속을 휙휙 스쳐 간다.
개인의 삶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각자의 삶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들게 된 것일까. 너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요즘이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삶의 시작과 끝이 모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일까.
시작과 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과정만큼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더 밀도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무겁게 눌러앉는다. 밀도 있는 삶을 위해서 지금 부족한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당장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것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무료함도 잠시 마음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뒤따르는 조바심.
여유를 가지는 법 또한 밀도 있는 삶에서 중요하겠지만 여유를 가져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누려야 할까. 나에게 없는 것을 하고자 한다면 ‘척’을 하다 보면 진짜 그렇게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다. 여유 있는 척, 마음 넓은 척, 괜찮은 척. 남용하는 것은 안 좋겠지만 ‘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정말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꾸며왔던 모습이 곧 내가 되는 순간.
금주 베트남 출장을 다녀와서 비로소 여행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여행은 참 좋구나. 그래서 다들 이따금 훌훌 털어버리고 여행이라는 쾌락을 느끼러 털어버리고픈 마음을 챙겨 떠나는구나.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올해에 떠날 계획을 세워야겠다. 혼자서. 제주든. 일본이든. 혼자서 해외여행을 해 본적은 없으니 가까운 일본도 좋겠지 싶다. 나의 마지막 스물셋, 스물다섯을 이왕이면 멋지게 갈무리 짓고 싶으니 구월엔 떠나야겠구나.
성장하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움과 무능력함의 고개를 마주해야 한다.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따갑게 쏘아대도 그 뿐이다. 쏘아댈 뿐. 내 삶을 이끄는 것은 그들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운영한 지 벌써 2년하고도 반이 흘렀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끈끈한 마음과 다정한 마음이 넘쳐나는 공간을 꾸리는 건 정말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일이다. 누군가가 위로받는 공간이자 나 또한 위로 받는 소중한 공간. 내게 위안이 되는 공간을 직접 구축해 나간다는 것은 지치는 삶에도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요즘 자주 느낀다. 자주 힘들어서인지. 갈수록 나만 챙기게 되는 삶에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훑어보게 되는 시간. 조금 더 다정해지는 순간. 다정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해준다. 나의 낭만이 이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