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여름의 또 다른 이름, 능소화.
드디어, 마침내. 다시 -
능소화의 계절.
피어나는 마음을 좀처럼 감출 수 없는 계절이.
더운 마음 위로 진득하게 엉겨 붙는 여름이.
여름 지나 가을 그리고 겨울 지나 봄. 그 끝에 다시 여름. 견디고서 다시 피어난다. 피고 지는 하루 끝에 마침내 다시 한번.
지겹도록 끈질긴 더위가 이어지는 여름이 싫지 않은 건. 이 여름이 이토록 다채로운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지 않은가. 빛이 많은 계절. 빛이 품은 다채로움도 가득. 덥지만 여름 빛이 품은 풍부한 색채가 더위를 나게 만들고, 굳이 굳이 나가게 만드니까. 여름 빛에 동그랗게 빚어보는 희망. 절망과 슬픔은 이불 밑에 잠시 숨겨두고, 사랑은 담장을 타고 내려오는 계절.
봄날의 포근한 햇살에 비해 따가운 햇살. 무르익는 마음. 봄 기운처럼 연하고 은은한 봄꽃들, 여름꽃은 따가운 햇살만큼 붉고 짙다.
이름도 어쩜 능소화.
자연스레 읽히고 어감도 좋다. 기억에도 뚜렷이 남아 오래 곱씹어 보는 이름. 여름의 또다 른 이름. ‘능소화’를 떠올리면 여름이. ‘여름’하면 능소화가 생각난다. 언젠가 나도 또 다른 무엇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곱씹는다. 무언가를 떠올리면 내가. 나를 떠올리면 무언가가 자연스레 꼬리를 물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찬찬히 흘러가기를 바라며.
유월 지나 칠월.
아름드리 피어난 능소화와 맞이한 첫날.
겨울날의 공기를 빌려오고 싶은 더위에도 무너지지 않는 예쁨이 이곳에. 무뎌지지 않을 아름다움이 잔뜩. 어느 순간엔 여름 같은 사랑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여름처럼 다채롭게 빛나는 사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