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지긋지긋하다. 이유는, 내가 사랑을 너무 못하는 인간인데 세상천지가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이 세상이 사랑으로 너무 아름답다. 정말이지 찬란할 정도로, 눈이 부실 정도로 사랑이 풍족하다. 그리고 그 모습들에 가슴이 한껏 벅차기도 하고. 사랑이 흐르는 영화를 보다가 뜨뜻해지다가도 얼마 못 가 미지근해지는 마음이. 왜 이리도 사랑이 지긋한지. 내가 너무 사랑을 못 하니까. 소질이 없으니까 그런 것이려나. 사랑은 재능의 영역인가, 노력의 영역인가. 유년 시절 양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더라도 사랑받을 수 있다. 받지 못한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쓴 시간들은 빛을 발하니까. 구김살 없는 척. 사근 사근 잘 웃고, 다정하고. ‘어디에가서나 사랑 받을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도 한번쯤 들어보고. 그러나 사랑을 잘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이 아름다운 세상에 소외감을 잔뜩 받는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느껴봤고, 가족에게도 느껴봤고, 좋아하던 사람에게도 느껴봤는데. 근데 그중에 제일은 세상인 것이. 이 삶 자체에 소외감을 느껴볼 줄은 몰랐겠지. 이렇게 허망하고 고독하고 절망적일 줄은. ‘생각보다 외롭지는 않아.’라고 적당한 합리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아주 외로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난 실로 혼자 하는 일들을 둘이 혹은 더 많은 사람들과 하는 것보다 더 수월히 척척 해낸다며. 나는 외로움에 강하고 사랑에 약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왔어.’라는 합리화.
+
외로움에 강하고 사랑에 약한 사람.
외로움에 강하다는 말을 내뱉고 보니 왜인지 서글퍼집니다. 어째서 외로움에 강한 사람이 되어버렸을까요. 외로움에 조금 약하고 사랑에 강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외롭지 않은 생명체가 있다면 오히려 안쓰러울 것 같습니다. 얼마나 고독하면 외롭지 않아질까 하고는 말이죠. 그러니 외로움을 느끼는 우리들은 미치도록 고독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언가에 무감해지는 일은 대체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니까요. 이런 저라고 죽상을 쓰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행복합니다. 행복하고 동시에 슬픔을 느껴요. 사람이니까.
아주 작은 생명체가 저를 빤히 살펴보며 금세 세상 무해한 얼굴을 하고 배시시 웃을 때, 강아지들이 이 세상 모든 향기를 탐구하듯 꼬리를 마구 흔들며 이곳 저곳 킁킁 거리는 모습을 보면 절로 행복합니다. 마냥 슬픈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죠. 다만 슬프기도 할 뿐입니다. 조금 자주. 그리고 그 깊이가 아주 아주 깊은 심해처럼요. 뒤이어 꼬리를 무는 상상치 못할 불안. 이유 없이 마구 엄습하는 불안. 사랑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불안.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같은 기분. 사람의 외형을 하고 사는 이름 모를 행성에서 떨어진 외계 생명체 같은 기분을 요.
저를 이따금 이름모를 외계 생명체처럼 만드는 사랑이 지긋지긋합니다. 동시에 어느 순간에 찾아올 지긋한 사랑을 바랍니다.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는 둥근 사랑을요.
05. 편지
안녕, 나른한 노래를 들으며 그대에게 보낼 글을 씁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사라진 생각들의 자리를 이런 생각으로 채웁니다. 부질없는 생각들로 한숨 들이마신 공기는 가습기의 수증기에 취해 마음 한편까지 텁텁 비릿해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깨어있을 땐 일을하고 일을 하지 않을 땐 심심해서 잠을 잡니다. 잠을 자면 꿈을 꿉니다. 그리운 꿈을. 기이하고도 슬픈 꿈을.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필요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