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아,
벌써 10월 끝 무렵에 다다랐어.
시큼한 은행 냄새가 나부끼는 가을이야.
오월의 햇살 못지않게 가을 햇살도 얼마나 부드러운지.
봄바람엔 따뜻함이 서려 있고, 가을 바람엔 차가움이 서려 있다는 차이.
나는 요즘도 여전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돈보다 마음을 쓰고 싶지만, 돈을 더 생각하게 돼. 잔뜩 가을 내음과 풍경을 즐기다가 우연히 시선이 가닿은 곳에, 5000/340이라는 부동산 시세를 보게 되면 초라해져. 어떤 사람들이 저곳에 사는 걸까. 잠시 현실에서 붕 떠 있던 마음이 비수가 되어 날아오는 거지. 당장에 지출을 어디서 어떻게 더 줄이고, 돈은 어떻게 더 벌어야할까. 대출 이자는 늘었고, 더 늘 테고. 살아온 날보다 일할 날이 더 많고. 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몸에 잔뜩 힘이 빠져.
그렇게 당장 해결 못 하는 것들이 나를 짓누를 때면 노래 볼륨을 한껏 올리고 생각을 마구 지워보려해. 요즘은 그래서 고막을 잔뜩 울리는 록 음악이나 랩을 엄청나게 듣는다. 인디 음악은 너무 삶 같아서 자꾸만 침체 되거든. 아예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게 좀 더 쉽더라. 요즘 내 도피 방법이야. 그렇게 도망쳐. 이렇게라도 잠시 멀어지려고 애를 쓰곤 해. 무아지경으로 땀을 흘리는 순간도. 현실의 생각이 버거워서 더 미친 듯이 숨이 차도록 움직여. 퇴근 후에도 일을 하고, 주말에도 어떻게 더 많이 일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유지할 수 있으려면 몇배로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서 즐거울 순간보다도 웃음처럼 쉽게 증발해 버릴 돈들이 떠올라.
다정아, 나는 여전히 사람이 무섭다. 여전히 그렇다. 사람이 주는 다정함도 매정함도 두려워. 언제까지 함께일까보다 언제 떠날까 싶은 게 더 커. 최근에도 그랬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무책임하고 참 쉽다. 마음이 그렇게 쉽다. 내가 무거운 걸지도 몰라.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나도 가벼이 떠오를 수만 있다면. 어디든 훨훨 날아갈 텐데.
요즘 가을바람이 참 좋은데 누구한테도 '같이 걸을래?'하고 말을 건넬 수가 없다. 말하지 못할 것들이 나를 조여와서 혼자여야만 하는 내가 나는 정말 버거워. 같이 걷자고 말하고 정작 나는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할까 봐. 그리고 그게 그 사람에게도 느껴질까 봐. 속상하게 만들까 봐.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시간을 주저하게 돼. 그래도 내가 본 아름다움은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를 거야. 함께이지 못해도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그나마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아. 적지만 봐주는 이가 있다는 것. 진심을 읽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을 말야.
다정아, 내가 언제까지 넘어져도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을까. 실은 아무렇지 않지는 않은데. 그래도 흉이 크게 남지는 않고, 생채기 사이로 돋아나는 새살 틈에 성장이 있지만 언젠가는 새살이 돋지 않고, 성장도 없고, 못난 흉만 잔뜩이게 되어버리면 말이야.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 흉을 보고 이름을 지어주고, 예뻐해 주자. 우리끼리라도. 이름이 생긴 것들엔 생명이 깃드니까.
나는 돈이 너무 싫은데, 매 순간 돈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돈이 너무 좋아서 괴로운 걸지도 몰라. 죽기 전에 다 기부해 버릴 건데. 보란 듯이 기부할 만큼 모이긴 하려나. 이런 칙칙한 말을 하기엔 날이 너무 선명하고, 아름답다. 녹음 짙던 나무들이 잔뜩 발개지니 눈이 즐거워져. 하늘에서 예쁨이 뚝 뚝 떨어진다. 걷다 보면 은행잎이 살랑거리며 머리를 스치곤 땅에 툭 떨어져.
3계절 동안 열심히 맺은 열매와 돋아난 잎들을 떠나보내는 나무들은 속상할까. 곧 앙상해지는 자신들을. 혹은 겨우내를 잘 버티어 만개할 봄을 떠올리며 설렐까. 아무튼, 곧 완연할 가을이야. 다음 주면 온통 붉어질 테지. 우리 손끝과 코끝도 한껏 붉어질 테고. 다정에게는 맞잡을 손과 꼭 안을 수 있는 품이 있길 바라. 없다면 우리 마음이라도 함께 포개자. 혼자보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보드랍게.
최근 나는 글을 통 쓰지 못했어. 회사에서 쓰는 문체, 일기에 쓰는 문체, 그리고 읽는 이가 있음을 의식하고 쓰는 글마다 문체가 달라서 어느 순간 내 글을 쓸 때 어떤 문체로 써야 하는지 몰라서 한참을 괴로웠어. 그렇게 글을 놔버렸고, 다른 이들의 문장 속으로 도피했지. 그렇다고 쓰지 않는다는 건 아니란 건 알 테지. 회사에서는 열심히 글을 짓지만, 그건 내가 쓰는 글과는 결이 또 달라서 글을 쓰는 내가 여러 명이 된 기분이 들곤 해. 회사에서 쓰는 글에서도 내 느낌이 베어나온다는 말을 들을 때면 신기할 때도 있어. 그럼에도 다양한 문체가 혼재하니 내 글을 쓸 때면 왜인지 어색해지더라고. 그런 글들이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다정’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가진 너라는 확실한 타자를 두게 된 거야. 다정은 내가 될 수도 있고, 이 글을 읽는 화면 너머의 그 누구든 될 수 있는 셈이지. 나는 너, 너는 나 그런 느낌.
다정아, 내 삶에는 너무도 많은 ‘나’가 존재하는 것 같아. 가끔은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이지? 싶을 때, 나로 인해 괴롭고 발버둥 칠 때 ‘괜찮아, 모두 나의 모습이야.’하고 속으로 나지막하게 읊조려.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내게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숨겨놨던 솔직한 내 마음이 말이야. 내가 나를 다독이는 데에도 한계를 느끼나 봐. 다정에게도 수많은 다정이의 모습이 있겠지. 가끔은 그런 모습에 괴로울 때도 있을 테고.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라면 좋은 면만을 가질 순 없는 법이니까. 우리 모두 괴로움의 늪 하나씩은 가지고 살지. 잠겨 죽어도 좋다는 말처럼 좋아하는 이들의 늪은 좋든 별로든 상관이 없게 되는 것 같아. 서로에게 잠겨 죽어도 좋을 만큼. 그만큼. 그만큼 네가 좋아, 다정아.
오늘도 어김없이 다 읽지도 못할 책 몇 권을 두루두루 챙겨서 나왔어. 뭐든 하나보다 둘 이상이어야 안심이 돼. 요즘은 서촌보다 더 안쪽에 있는 북촌, 삼청동을 자주 찾아. 사람도 적고, 한적하고, 왜인지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뭉클한 느낌도 들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모른다는 말만 잔뜩 한 것 같은데 이렇게 보니 모르는 게 참 많네. 나는. 어쩜 새로이 배워갈 것이 많으니 재밌겠다고 생각해야겠어.
이번에 읽은 책에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어. 전 회사 팀원이신 울님께서 다시 읽고 있는 책인데 너무 좋아서 내게도 선물해 주신 책이거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가의 ‘걷는 듯 천천히’>라는 산문집인데 작가 이름이 한 번쯤 들어 본 이름일수도 있어. 영화 감독으로도 유명하시고, 보지는 않았어도 말이야. 소설도 꽤 쓰셨고. 실은 나도 이분을 알지만 영화도 책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어쩌면 울님이 내게 이 작가로 가닿을 수 있게끔 이어주신 셈이지. 거기에 이런 말이 나왔어. “모호한 대상에게 하는 말은 가닿지 않으니, 어머니 혹은 애인이라도 좋으니 한 사람에게 이야기 하듯 말해라.” 그 문장을 읽고, 네게 다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용기 내서 다시 문장을 지어.
이메일을 받아 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답신의 수도 많지 않아. 그런 덕분에 답신을 하나하나 다 읽을 수 있거든. 가끔은 답신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내게 뉴스레터를 보내준 다는 느낌이 들어. 비공식적인 비밀 교환일기를 쓰는 기분도 들고 말이야. 가끔은 기다리기도 해. 이게 말이지 생각보다 되게 애틋하거든. 누군가가 내 글을 진득이 읽고. 자신의 생각을 그리고 그 마음을 소중한 시간을 녹여서 꾹꾹 담아 보내준 다는 것이. 이게 참 쉽지 않은 일이야. 쉬워 보이는 일도 막상 하려 하면 귀찮아지고 힘들어지잖아. 그런 것들을 이겨내고 내게 전해주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이런 마음을 너무 아껴. 오래도록 이런 마음을 받아보고 싶다면 욕심인 걸까.
흰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백발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렇게 편지하고 싶어.
‘요즘 날이 참 좋지요. 완연한 가을날이에요. 요즘엔 다도를 배웠어요. 여름 끝물에 소란해졌던 차를 내리고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며 마실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옆집 정 할머니가 주신 루이보스차가 얼마나 구수하던지. 다음에 물어보고 여러분들에게도 알려드릴게요. 요새 무릎 관절이 많이 안 좋아져서 따로 운동을 시작했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여러분도 관절 건강 틈틈이 잘 챙기세요.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오니까요. 미리 준비해 두어야 덜 아플 수 있으니까요.’라는 사소하고, 소소하고, 가뿐한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를 소담히 쌓아가고 싶어. 내가 살고 있는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전하고 싶어.
네게 말하듯 이야기하니 이렇게 글이 잔뜩 써지는 걸 보니 나는 어떻게 든 글을 쓰고 싶은데, 말을 뱉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로웠나 보다. 다정아, 벌써 10월의 끝 무렵이구나. 선선한 바람결 끝에 차가움이 배어있어. 녹음 짙던 나무들도 하나 둘 노랗게 그리고 주황빛으로 어여쁘게 염색해 나가고 있고 말이야. 완연한 가을이 곧 펼쳐질 것 같아. 여러 산맥도 잔뜩 화가 날 예정이겠구나. 다음 주엔 좀 더 단풍을 즐기러 가봐야겠다. 작년 가을은 기억이 거의 없어. 올해는 가을의 기억을 좀 남겨보려고. 다정아 네가 있는 그곳도 아름다운 가을이 물들었길 바라. 좋은 하루 보내. 오늘은 이만 줄일게. 2023. 10. 2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