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회고
- 2023년 한 해를 돌아보며.
돌아보니 참 긴 시간이었다.
12월에 들어섰을 때는 벌써 일 년인 줄 알았는데 회고를 하다보니 까마득한 일 년이었던 것 같다. 올 한 해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더 많아 유독 길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의 연속이라지만 특히 더. 나는 역시 ‘나’이지만 올해는 내적으로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싶다.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일년 전과의 나와 현재의 나는 분명 다른 답을 낼 것이라는 확신이 들정도로 말이다. 앞으로도 더 많이 변하고 달라질 테지만 올 한해는 내게 정말 중요한 한 해가 되었다. 어쩌면 변곡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유난히 내게 질문을 많이 던졌고, 더 열심히 많이 헤맸고, 괴로운 일도 많았는데 그 만큼의 성장도 있었다. 성장하려면 이만큼 헤매야 하는 건가 하며 두려운 마음도 든다. ‘어차피 겪을, 그리고 닥쳐 올 성장통이라면 미리 걱정하지 말자.’하며 두려운 마음을 접어본다. 이렇게 무거운 감정을 누르고, 접는 법을 체득하게 된 것도 시련 덕분이니까. 힘듦 속에도 긍정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여전하게 어렵지만, 근육도 계속 자극하다보면 신경이 깨는 것처럼 나의 정신(?)을 계속 탐구하다 보니 어느정도 알 것 같다. 물론 확실한 컨트롤은 불가해서 불안한 순간이 없지 않지만 언젠가는 더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작년 1월 1일에 적었던 새해 목표들을 보았는데 포부가 참 컸더라. ‘녀석..욕심 많다.’ 생각하며 픽- 웃었다. 진짜 인생 살기 어렵다고 맨날 되뇌이면서 이렇게 이루고 싶은게 많아서야 구질구질하게 오래 오래 일 벌리며 살겠구나 싶다. 노트 속 목표 중 이룬 것은 거의 없는데 목표에는 없지만 그 밖에 이룬 것이 많았다. 1일에는 생각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23년을 살아가면서 많이 이뤄낸 것이다. 퇴사도 했고, 이직도 했고, 메일링 서비스도 시작했다. 해외 출장의 로망이 막연하게 있어는데 갑작스런 해외 출장으로 버킷리스트 어딘가에 있었던 것 하나를 이루기도 했다. 분명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런 빡센 강행군으로의 해외 출장은 조금 고려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인생 첫 동남아를 해외 출장으로 가보게 된 것도 예상치 못한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4월부터 시작한 ‘매일 운동하기’가 홈트에서 시작해서 헬스 웨이트로 커지기도 했다. 다이어트가 목적은 아니었는데 몸이 가벼워지고 체력도 늘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막상 정해두었던 큰 포부와 목표는 대부분 이루지 못했지만 여러가지로 좋은 습관과 새로이 해낸 것이 많았다. 그리고 든 생각은 이젠 연말 연초에 한 해 목표를 세우기보다 삶의 방향을 다지기로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현재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답하기로 했다. 그렇게 질문 속에서 내린 결론들이 나침반 역할을 해주겠지. 그리고 이 답변이 매 해 변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흐르는 삶을 살고 있으니. 그래서 궁금해진다. 몇 년 뒤의 나는 또 어떤 삶의 방향을 정하고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지. 여전히 몇 해 전 그리던 삶을 그리며 살고 싶을지. 이 답을 알기 위해선 한 해를 또 열심히 살아야겠지. 살아내보자 또.
[ 자잘한 일기와 달의 기록들.]
- 1월의 기록이 유독 많아서 몇 편 실어봅니다. 1월 일기만 따로 또 모아봐야겠어요. 열심히 기록했었네요. 들춰보니 새록새록 기억나고 아프면서도 예쁜 기억들이라 다시 기록해두고 싶어요.
* 12월이 되어 1월에 썼던 일기 수첩을 열어봤다. 새해 답게 열심히 기록했고, 내 자신에 대한 물음도 유독 많았다. 사랑에 대한 물음이 눈에 띄었는데 1월의 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12월의 내가 있다. 지금 저 질문을 내게 누군가가 던졌더라면 다른 말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1월의 내게 공감한다. 12월의 나보다 1월에 내가 사랑에 더 진심이었던 것 같다. 12월의 나에게 사랑이 너무도 옅다. 언제든 다시 짙어지겠지. 사랑은 그런거니까.
Q. 2023년 김윤지에게 사랑이란
- 내 아는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커다란 것
- 가장 어렵고 예민하고 아름다운 것
- 가질수 없는 것. 소유의 개념보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행하는 것
- 노력으로 되지 않는 감정
Q. 나는 어떤 때 사랑에 빠지는 가
- 누군가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 때.
- 함께있는 사람에게 보이게 되는 내 페르소나가 안정적이고 발전적이고 적절한 균형감을 보일 때.
- 가치관이 비슷하고 동경을 넘어 그 사람의 내면을 더욱 가까이서 보고싶고, 알고싶고, 함께하고 싶을 때.
-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
- 사람 혹은 그러한 풍경이나 영화 또는 책 등등
1월
새해는 희망차고 동시에 뒤숭숭하다. 새해라는 키워드가 주는 긍정감. 새출발과 같은 느낌으로. 단지 하루 이틀 차이로 사람들의 마음먹기가 달라지는 것에서 이상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새해라고 꼭 새로운 마음을 품어야하나? 지금껏 품어온 마음을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치 않을까. 꼭 무언가를 빌미로 나아가야하는 가. 새해는 합법적 신념 같다. 새해라는 시기를 이용해서 탈바꿈 하려는. 이왕이면 ‘지금’하는 게 더 좋을 것인데. 아무튼, 작심하루라도 좋을 결심이 잔뜩 늘어지는 1월이다. 나의 1월은 12월의 연장선 13월에 불과한 느낌이지만 스물넷에서 스물다섯. 나이가 달라짐이 주는 느낌이 새해보다 크게 다가온다. 지난해 보다 더 성숙해져야할 것이고, 책임은 늘어날 것이다.
- 1월 1일
나는 지금 달리는 기차 안이다. 대전에서 서울로. 모두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바쁜데 나는 일터로 돌아간다. 돌아간다는 표현이 맞는 걸지는 모르겠다. 새해부터 일이라니. 올해는 일복이 많을 건가 보다.
- 올 해의 첫날은 대전과 서울에서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22년은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갈무리를 지었고, 23년은 정말 오랜만에 홀로 아닌, 부모님과 새해를 맞이하고 떡국도 먹었다. 낯설면서도 너무 편안하고 친근한 순간. 23년은 내가 아끼는 모든 이들을 더 잘 챙길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더욱 부지런한 내가 되어야겠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룬 22년이지만 왜인지 아쉬움이 꽤 남는다. 사랑 앞에서 움츠렸던 내가,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내가. 새해가 오기 전에 내가 도망쳤던 감정과 사랑에 부딧혀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 관계에 책임을 다 해보려고. 낯섦을 설렘으로 착각하지 않고 더욱 신중하게. 확신 앞에선 망설이지 않기. 실패를 두려워 말고, 성공에 자만하지 않기. 쓰러지면 몇 번이고 일어날 용기와 의지를 갖는 한 해가 되길. 늘 그랬듯 새해는 설렘과 불안을 동반한다.
- 1월 2일
새해의 출발과 동시에 새로운 디자이너 분이 들어오셨다. 지루해져가던 생활 속 작은 단비같은 느낌. ‘아.’ 나도모르게 새로움을 찾았고, 목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낯선 것. 알게모르게 원했던 새로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내게 낯설은 무언가. 1월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12월의 피로감이 너무 큰 탓인지도 모르겠다. 12월 말에 3년을 살았던 동네를 떠나 거리가 꽤 있는, 너무도 낯선 동네로 이사를 마쳤는데 여러모로 내가 계획한대로 풀리지 않아서 누적된 피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낯설어서 편안하다 느낀다. 이상한 건 나일지도 모르겠다. 중경삼림을 좋아한다는 울님과 더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 올 한 해 더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들에 대한 부푼 기대감과 설렘.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나는 누구와 깊은 마음을 나누게 될까. 그러고 누가 내게 깊은 마음을 줄까.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 사랑을 하긴 할까. 어떤 누가 나를 더 잘 살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들고, 더 나은 내가 되게끔 할까.
2월
1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2월이 찾아왔다. 점심시간이면 늘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 글을 쓰거나, 혹은 휴대폰을 뒤적였다. 점심시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점심을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식대가 나오지 않는 회사에서 심지어 점심을 잘 먹지 않는 내가 만원 혹은 만원이 넘는 돈을 쓰는 것이 너무도 타당치 않았기에. 맛있는 음료 한 잔과 좋은 책 한권의 문장들이 배부른 점심보다도 넉넉하고 푸근하게 나를 채웠다. 12월인 지금도 여전히 이따금 카페에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더 배부르다. 2월에 나는 지금과 비슷하게 많이 읽었고, 일에 지쳐있었다. 지금보다 내 글을 더 많이 썼던 것도 같다. 잘 몰라서 조금 더 용감 무쌍했다. 알면 알수록 작아지는 것이 모순적이게도 잘 모를 때 잘 몰라서 우쭐한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가끔은 그런 무모함을 빌려오고 싶고. 아무튼 2월은 잘 몰라서 조금 무모했던 것 같은 달인데 10달이 지나니 희미해져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만큼 괴로운 일도 덜했으니 희미한 게 아닐까 싶어서 평범한 2월이 부러워졌다.
3월
3월의 나는 좀 많이 지쳤었다. 회사에도 지쳤고, 사람에도 지쳤고, 내 자신도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3월에 쓴 블로그 글만 봐도 힘에 부친 사람의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힘을 내보겠다고 애쓴 내 자신도 보인다. 아무래도 곧 벚꽃이 흐드러질 봄이라 그런가 간질거리는 설렘과 함께 피어나지 못하는 내가 겹쳐서 아름답고도 괴로운 시기. 봄바람은 살랑 거리는데 무겁게 가라앉는 나라도 꽃을 틔워보겠다고 힘쓰는 계절. 유독 내 자신에게 질문을 많이 던진 시기라 스물셋, 스물다섯 김윤집이라는 인터뷰집도 당차게 시작해놓고 끝맺음을 맺지 못했다. 열린 결말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시작은 했는데 얼기설기 마무리되어버린. 그래, 늘 모든 것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리라는 것은 없으니. 그렇지만 역시 찜찜하다.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뭐든 거창하게 꿈꾸고 시작하면 부담을 느껴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 다시 나를 배운다. 나는 뭐든 작고 소박하게 은은히 꾸준하게 해야한다는 것을. 몽땅처럼. 3월의 나는 잘 모르는 인간이었다. 무엇이 힘든지도 모르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라서 물음표만 가득한. 내 마음도 모르겠고. 아무튼 뭐든 마침표가 하나도 없던 3월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독한 감기에 걸렸었다고 생각한다.
4월
4월, 벚꽃이 한창인 달. 두달간의 조향 수업이 막을 내렸다. 토요일마다 신촌에서 5시간씩. 왕복 2시간 총 7시간의 여정을 두달을 했다. 웃기게도 나는 조향 3, 2급을 따고 한달도 채 안돼서 향수 회사를 관두게 됐지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0여 만원의 돈과 40시간 가량의 시간을 쏟아붓고 향수회사 퇴사. 낸들 이럴 것을 알았겠느냐만은 그래도 후회는 없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고, 후각도 훈련을 하면 깨어난 다는 것을. 그 무렵 생각과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후천적으로 깨어나는 감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몸소 느끼게 되기도 했고. 생각을 많이 해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늘려가지 않으면 생각도 제한된다. 그렇지만 내가 내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도구를 많이 알고 사용할 수 있다면 생각도 어쩌면 무한히 확장해 나갈지도 모른다. 끊임 없이 배워야하는 구나. 끊임 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공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세계를 확장해 가려고 노력해야한다.
5월
퇴사를 했다. 가장 오래다닌 회사.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었던 직장이었다. ‘그만 다녀야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그만뒀지만 돌아보니 배운 것이 많다. 사람은 꼭 좋을 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단히 힘든 시기에 가장 많은 성장을 도모한다는 것도. 12월에 다다라 돌아보았을 때, 이때의 힘듦은 매우 귀여운 정도였다. 이정도 힘듦에 힘들어 했구나 싶을 정도로. 힘듦에는 한계가 없는 건지. 면역이 생기는 건지. 아, 힘듦은 내성이 없구나. 적어도 지금 내게는.
6월
작년에 올해에는 꼭 도쿄를 갈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혜연과 도쿄를 가게 되었다. 퇴사 전에 쓰지 못한 연차가 많아 모조리 사용해서 6월 20일인 입사날까지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가장 오랜 친구 혜연과 첫 해외여행, 도쿄를 가게됐다. 혜연이도 마침 하와이로 교환학생을 가기 전, 다니던 회사 인턴을 끝내어 서로 시간이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혼자 해외는 아직 막막해서 혜연이 함께 해주지 않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유월의 도쿄를 이루게 해 준 혜연이에게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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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쿄는 서툴렀고, 그래서 인상깊다. 계획이 틀어져도 불평 불만 하나 없이 함께해 준 혜연이. 분명 힘든 점 하나쯤은 있었을 텐데.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조금 더 알아봤어야 했는데. 다음엔 더 철저하게 준비해 보자.
도쿄 어디를 가든 대부분 도쿄타워가 보였다. 도쿄타워가 마치 태양이고, 그 중심으로 빙빙 도는 행성이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제일 기억 남는 것들은 생각보다 사소한 기억들이다. 힘겹게 도착한 우에노 공원 벤치에서 오리배를 타는 사람들을 보고,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돌아오던 것. 가마쿠라에서 한 편에 바다와 기찻길을 두고,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수줍고 붉은 얼굴로 지나가던 학생들에게 전해오던 설렘. 손 붙잡고 지나가던 할머니와 손녀의 뒷모습. 작은 아이들이 줄 지어 집으로 돌아가던 귀여운 뒷모습과 그 옆으로 잔뜩 피어있던 연보랏빛 수국.
7월
새로운 회사에 입사해서서 많은 일을 맡은 것도 아닌데 긴장도가 높아서 내내 피로했던 한 달이다.
소규모 회사만 다니다 보니 새로이 들어간 곳에서 적응이 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팀이라고는 고작 1-2명 정도가 다였는데 같은 부서의 팀원이 약 10명이나 되는 곳. 진짜 팀이 생긴 느낌이고, 그곳에 속한 게 신기했다. 그러나 나는 팀원이라고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1년 주니어 계약직이 인턴처럼 느껴지진 않을까. 내가 잘 속할 수 있을까. 짐은 되지 말자 싶어서 회사에서 내내 신경이 곤두선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잘해야지. 어떻게든 해내보자.
8월
3박 5일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입사한지도 채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런 내가. 솔직히 가게 되어서 좋았고, 감사했고, 동시에 두려웠다.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막연한 로망으로 자리잡고 있었을 뿐, 가능할 일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다녀와서가 더 고비였다. 해외 출장을 가게 된 것은 좋은 경험이었으나 회사의 프로세스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다녀왔고, 발행해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막막했다. 하나를 해결하면 해결해야 할 것들이 두배로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9월
구월은 여러모로 슬펐다. 올해 생일을 다른 달로 옮기고 싶을 만큼 괴로운 달이어서 나의 탄생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할 수 없었다.
- 입사 동기였던 젬마가 퇴사했다. 몇 년간 일을하면서 처음으로 입사 동기가 생겼었고, 입사 동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는데 오래 함께 하지 못해서 슬픈 마음이 내내 들었다. 그래도 한 편으로 나는 1년은 버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야 퇴직금을 받으니까. 아직 넥스트 스텝이 없으니까. 내 생활비는 내가 충당해야하니까. 그만두면 평범한 하루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지니까.
- 라고 생각하며 퇴사를 염두에 두지 않던 내가 며칠 만에 퇴사를 고했다. 그 일 이후로 지옥같은 며칠이었다. 내가 많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했고, 모든 것에 지쳤다. 한 순간에 방향을 잃었었다. 아무런 파도가 없는 대양에 남겨진 느낌이었다. 바람이 없으니 파도도 없고,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버린. 그 주는 이틀을 내리 울었다. 어떤 글만 봐도 울고, 재밌는 걸 봐도 울고, 너무 많이 울면 피부가 쓰라리고 아프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도 한번 느꼈었던 것 같은데. 아무쪼록 나는 지금 살아있고, 회사는 퇴사하지 않게 되었고, 다니고 있다. 예상하지 못할 일에 또 다시 예상하지 못한 결과. 이제 앞으로의 생애를 감히 예상하지 않기로 했다.
10월
원래라면 퇴사를 했을 달이다. 만약 내가 그 일을 기점으로 정말 퇴사를 했다면 지금의 무얼 하고 있을까. 다른 직장을 구했을까?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까. 평행이론의 세계가 있어서 퇴사를 한 김윤지가 어디선가 살고 있다면 궁금해 진다. 하루하루 버텨내기에 바쁜 10월이었다.
11월
안정을 찾았다. 일에도 마음도. 원래처럼 회사 일은 회사 일대로 열심히. 사이드 프로젝트는 그것대로 열심히. 헬스클럽을 등록했다. 등록 전에 집에서도 충분히 운동 할 수 있는데 하며 망설였지만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더욱 빈틈 없는 삶을 살게 되었고, 체력도 더 좋아졌고, 운동에 몰입할수록 무언가에 몰입하는 힘이 더 커졌다. 소소한 성취감도 보람찼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해내는 내가 기특해서 내가 싫어지는 순간도 적어졌다. 해내다 보니까 더 많이 해내고 싶어졌다. 삶에 활기를 되찾은 달이다.
12월
12월인 사실만으로도 설레는 달이다. 낭만이 가득 흐르는 달. 거리에는 캐롤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사이는 더욱 가까워진다. 안 그래도 붉어지는 얼굴에 발그레한 설렘이 얹힌다. 마음도 쉽게 붉어지는 달. 반대로 마음이 붕뜨는 기념일이 반갑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입체적이니까. 앞이 있으면 뒤가 있으니까.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으니까. 그럼 그런대로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함께 붕뜨지 않아도, 설레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특별할 필요 없다고. 그런대로 괜찮다고. 슬프면 슬퍼도 괜찮다고. 그립다면 그리워해도 괜찮다고. 그냥 그렇다고. 그래도 한 해 끝을 맞이한다는 건 좀 특별히 여겨도 되지 않을까. 하루하루 차곡 쌓아간 날들에 매듭을 짓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하루를 살아낸다는 건 쉬워보일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아침과 밤을 365번을 맞이하고 보내었으니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에게 존경을 표한다. 살아간다는 건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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