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에서 최선으로.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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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아마도,
최악일 수도 있었던 하루였다.
원래대로라면 수요일이던 전시 촬영 날을 비가 온다는 예보에 하루 앞당기게 됐고, 전날에 바꾼 일정에 미리 찾아뒀던 숍들의 휴무 행렬을 당일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다른 숍들을 금방 찾았으나 오늘만큼은 내리지 않을 거라던 비가 그칠 기미 없이 오히려 시원하게 쏴-쏴- 내리는 게 아닌가. 내 속도 모르고. 타들어 가는 속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일은 해야 했고, 촬영을 무를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카페 촬영을 끝내고 근처 편의점으로 뛰어가 우산을 샀다. 전시장으로 이동해 우산을 접으려고 보니 고장나서 접히지 않는 게 아닌가. ‘뭐지 정말 오늘 일진 사납네.’ 구시렁구시렁 속으로 투덜거리고 힘으로 접어놓은 우산을 뒤로 하고 신분을 밝히고 촬영을 시작했다. 삼각대를 세워두고 이리저리. 전시는 생각보다 더 알찼고 재밌었다. 도슨트가 시작되기 전에 촬영을 끝마쳐야 하는 마감 시간이 없었더라면 두 시간은 족히 있다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우려했던 촬영도 나름 잘 마쳤고, 고장난 우산을 겨우 펼치고 다른 편의점에 들러 새 우산을 샀다. 육천 원짜리 투명 우산.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고 새 우산을 펼친 지 10분은 지났으려나. 강한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지고 찢어졌다. 뭐랄까 정말 되는 게 없는 하루였는데 이것들을 작은 헤프닝으로 넘기면 적어도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될 일 아닌가 싶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단지 작은 사건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생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서 인생이니까. 내가 모를 것들이 나를 덮쳐오는 게. 되는 것도 없었지만 반대로 해낸 것들, 꾸역꾸역 촬영을 잘 마치고 사지 멀쩡히 돌아온 것. 어느 하루가 최악으로 치달을 땐 이렇게, 해낸 것들. 잘 돌아온 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해내지 못한 것들이 나를 마구 괴롭힐 때도 작게나마도 성취한 것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자꾸 나를 일으켜 세우고 응원하고 칭찬해 주고 어떻게든 애써 버티고 나아가는 나를 대견하게 여겨주기로 한다. 그렇게 오늘의 하루가 최악이 아닌 최선을 다한 하루가 된다. 관점을 아주 조금만 바꾸어도 나의 하루가 손바닥 뒤집히듯 다른 하루가 되는 것이다. 어느날은 이마저도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관점을 틀려는 노력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한다. 비관보다 낙관.
그늘에서도 햇빛을 바라보려는 노력. 어둠은 곧 빛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림자는 빛에 둘러싸여 있기 마련이니까. 언제나 빛이 내 곁에 있음을 잃지 말 것. 심연을 걸을 때도 믿음을 잃지 말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