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불투명한 여름
비가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던 평일 점심이었다. 투명 우산을 고집하는 내가 언제나처럼 들고 온 우산을 펼치고 팀원분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던 일. 식당엔 들어서니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우산 통이 보였다. 다행히 투명 우산은 없었고 불투명한 우산 하나만이 보였다. 부러 불투명한 우산이 꽂힌 통을 피해 우산을 꽂았다. 내가 알기엔 내구성이 불투명한 우산이 더 좋은 걸로 알고 있었으며 가격도 좀 더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굳이 굳이 투명 우산을 집어 갈 일도 헷갈릴 일도 없겠거니 했다. 했는데. 그랬는데. 아주 희미한 ‘설마’의 마음을 관통해 버리고는 만 것이다. 어째서 ‘설마’의 마음은 피해 가는 일이 없지 않는가. 굳이의 행동이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이었고 퍽 당황스러웠다.
투명 우산이 사라졌다. 투명 우산과 불투명한 우산을 헷갈릴 수 있다고? 싶었는데 어쩌면 그 사람에겐 불투명한 우산은 그저 비를 피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라 투명하든 덜 투명하든 상관이 없어 무심하게 집어 갔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려 해보았으나 좀체 슬픈 마음이 사라지진 않는다.
빗방울 필터를 씌운 듯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우산을 쓰고 아직도 낯선 이 서울 거리를 걷는 것이 내겐 사소한 행복이라는 것을 상대는 영영 모를 일이다. 누군가의 사소한 행복을 낚아채 버렸다는 것을. 누군가의 투명한 여름을 품어간 일을. 나만이 슬플 일이다. 투명한 여름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이왕 이렇게 된 일 그도 투명한 여름을 만끽해 본다면 좋겠다. 문득 투명해진 우산을 바라보며. 투명한 우산을 투과하며 보이는 짙은 여름날을 잔뜩 들이마시며.
이슬비가 내리는 날 토독- 토독- 떨어지는 날에 만끽해 보는 귀여운 빗소리의 간질거림. 빗방울 사이로 보는 여름의 풍경. 눅눅한 공기가 사근사근 스며들어 촉촉해지는 일. 고온다습한 기온에 우러져 나오는 여름의 짙은 녹음에 마음을 잔뜩 흘려보는 일.
여름엔 부지런해야 한다. 고여있어도 너무 내달려도 안 되는 계절. 고이면 잔뜩 곰팡이가 질 것이고, 내달리다 보면 탈진해 버리는 계절이니. 한 숨 쉬어가야하는 계절이다. 고이는 마음에 문을 열어 바람을 불어주고, 앞만 보고 내달리는 순간에 무르익는 신록을 품어보는 일. 여름의 쨍한 빛이 젖어버린 마음을 보송하게 말리고, 작열하는 탓에 가물어 버린 마음엔 비를 내려줄 테니.
여름이면 돋아나는 마음들이 져버리는 마음을 도닥인다. 여름의 마음은 대체로 맑고 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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