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적인 기록을 남기어 봅니다.
최근엔 저를 기록하고 이야기하기보다 제가 부여한 인물들의 삶에 몰입하느라 도통 제 삶에 몰입하지 못했어요. 동시에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쓰일 마음이 이상한 곳에 가서 엉겨 붙곤 합니다. 누군가를 품는 일도, 돌보는 일도 동시에 여러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치명적인 단점에도 장점이 있기 마련이지요. 한 가지를 깊고 섬세하게 품는 일 말이에요.
날이 제법 좋습니다.
너무 뜨겁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히 선선한 초여름 날씨를 만끽하고 있어요. 하늘은 청명하게 푸르고 노을은 붉고 강물의 표면 위로 노을빛이 빚어낸 수많은 별이 일렁입니다. 8시가 지난 시간에도 어둡지 않은 유월의 밤을 느끼며 저에게 몰입해 봅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여름 빛깔이 잔뜩입니다. 제대로 무르익은 초록빛이 잔뜩입니다. 무성한 풀들과 잎사귀.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들도 초록 잎으로 무성히 둘리어 저마다의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하늘하늘 불어오는 바람에 스근하게 흔들리는 초록 잎들을 볼 때면 수줍게 춤을 추는 것만 같습니다. 솔찬히 맡아지는 여름 내음. 향기마저 초록빛으로 가득합니다. 산뜻한 풀 냄새가 쌉싸름하게 퍼지며 온몸을 감싸옵니다.
어째서 여름하면 더운 계절임에도 청량하고 청명하여 시원한 이미지를 잔뜩 떠올리게 하는 걸까요. 더운 만큼 차가운 것들을 찾기 때문이겠죠. 이 생각이 돌고 돌아 사랑으로 되돌아갑니다. 사랑을 자주 말하고 사랑에 대한 말과 생각을 자주 곱씹는 때면 그만큼 사랑에 갈증이 나기 때문인 걸까 하고요. 그렇다면 지금의 저는 몹시도 사랑이 고픈 것일까요. 동시에 함께이기를 두려워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적당한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제가 하루도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 날이 없으니까요.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에서 보았던 구절이 떠오릅니다. '사랑을 하는 자들은 이미 사랑 속에 있기에 사랑에 대한 의문과 많은 물음을 생각지 않는다.'는 말을요. 이어서 삶을 진정으로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삶에 관해 자주 묻는다는 문장이 따라왔는데 몹시 정곡을 찔러 가슴 한편이 쓰라립니다. 마주하기 싫은 것을 누가 내 눈앞에 데려와 마음속에 집어넣은 듯했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너머의 그대는 사랑 속에 계신가요. 어떤 사랑을 겪고 계실까요. 어떤 삶을 지나고 계시는가요.